BPW 인천클럽 회원과 국내외 참석자들이 창립 20주년 기념식에서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06년 출범한 BPW 인천클럽은 여성의 권익 향상과 전문직 여성의 연대, 차세대 여성 리더 육성을 이어오고 있다. 사진=BPW 인천클럽 제공BPW 인천클럽 회원과 국내외 참석자들이 창립 20주년 기념식에서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06년 출범한 BPW 인천클럽은 여성의 권익 향상과 전문직 여성의 연대, 차세대 여성 리더 육성을 이어오고 있다. 사진=BPW 인천클럽 제공

지난 4일 오후, BPW(Business and Professional Women) 한국연맹 인천클럽 창립 20주년 기념식을 앞둔 행사장은 일찌감치 분주해졌다. 회원들은 주차장과 행사장을 오가며 참석자를 맞고, 좌석과 진행 순서를 살폈다. 해외 참석자 안내와 통역까지도 직접 챙겼다.

오후 2시 국제심포지엄에 이어 오후 6시 기념식이 시작됐다. 내빈 의전과 소개, 진행까지 회원들이 역할을 나눠 맡았다. 손이 부족한 곳에는 말하지 않아도 누군가 달려와 자리를 채웠다.

조금은 분주하고 때로는 서툴렀지만, 그래서 더 따뜻한 현장이었다. 화려함보다 ‘함께’를 택한 20주년. 지난 20년간 BPW 인천클럽을 이어온 힘이 무엇인지 행사장 곳곳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육아휴직 없던 시대, 인천에 뿌린 ‘여성 연대’의 씨앗

BPW 인천클럽이 창립 20주년을 맞아 황진명 초대회장(왼쪽)에게 감사의 뜻을 담은 꽃을 전달하고 있다. 초대회장에서 현 회장으로 이어진 인천클럽 20년의 발자취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사진=BPW 인천클럽 제공BPW 인천클럽이 창립 20주년을 맞아 황진명 초대회장(왼쪽)에게 감사의 뜻을 담은 꽃을 전달하고 있다. 초대회장에서 현 회장으로 이어진 인천클럽 20년의 발자취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사진=BPW 인천클럽 제공

이날의 20년을 이야기하려면 황진명 초대회장(인하대 신소재공학과 명예교수)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가 인천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976년. 여성의 사회 진출이 쉽지 않았고, 직장 여성이 출산과 육아를 병행할 제도적 기반도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육아휴직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대학에 몸담았던 황 초대회장 역시 방학을 이용해 아이를 낳아야 했다. 능력을 갖춘 여성도 조직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기 어려웠고, 여성의 사회 진출이 때로는 견제와 경계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 경험은 은퇴를 앞둔 그에게 하나의 숙제로 남았다. 여성들이 자신의 능력에 걸맞은 권리와 위치를 찾고 서로의 성장을 돕는 울타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2006년 2월, BPW 인천클럽이라는 작은 씨앗을 인천에 심었다.

황 초대회장은 “작은 씨앗을 뿌렸는데 20년이 지나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여성단체로 성장한 모습을 보니 감회가 남다르다”며 역대 회장과 회원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앞으로도 역량 있는 여성 인재를 발굴하고 서로의 성장을 도우며, 각자의 전문성을 지역사회에 돌려주는 조직이 되기를 당부했다.

이날 그는 남편 김유항 전 인하대 부총장에게도 특별한 고마움을 전했다. 가사와 육아가 여성의 몫으로 여겨지던 시절, 기꺼이 그 짐을 함께 나눠준 ‘인생의 동반자’가 있었기에 자신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는 회고였다. 20년의 출발점에는 그렇게 한 여성의 도전과, 그 곁을 지킨 동반자의 응원이 함께 있었다.

일곱 명의 회장이 이어온 20년…전국 리더십으로 확장

황진명 BPW 인천클럽 초대회장이 창립 20주년 기념식에서 지난 20년을 돌아보며 인사말을 하고 있다. 황 초대회장은 여성의 권리와 사회적 역할을 넓히기 위해 시작한 작은 움직임이 지역사회를 대표하는 여성단체로 성장했다고 회고했다. 사진=BPW 인천클럽 제공

황 초대회장이 뿌린 씨앗은 이후 일곱 명의 회장을 거치며 뿌리를 내렸다. 황진명 초대회장에 이어 이정희 2·3대 회장, 이영휘 4·5대 회장, 이행숙 6·7대 회장, 정은섭 8대 회장, 김영희 9대 회장, 유설희 10·11대 회장으로 리더십이 이어졌다.

이들의 활동 영역은 대학과 의료, 간호, 행정, 기업, 디자인, 교육 등으로 다양하다. 각자의 전문성을 조직 안으로 가져왔고, 선배 회원의 경험이 후배 회원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어왔다. 특정 직업군이나 세대에 머물지 않고 전문직 여성들의 연대를 넓혀온 것이 인천클럽 20년의 특징이다.

특히 인천클럽은 지역클럽에 머물지 않고 BPW한국연맹 회장 2명을 배출했다. 이정희 인성의료재단 한림병원 이사장이 BPW한국연맹 제26대 회장을 지냈으며, 이영휘 인하대 간호대 명예교수 역시 한국연맹 회장을 맡아 전국 BPW 활동을 이끌었다. 인천에서 성장한 여성 리더십이 전국 조직으로 확장됐다는 점에서 인천클럽이 걸어온 20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대목이다.

이정희 전 회장은 “지난 20년은 전문직 여성들이 자신의 권익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각자가 가진 전문성과 경험을 지역사회 발전으로 연결해온 시간이었다”며 “앞으로는 선배 세대가 축적한 경험과 차세대 여성 리더들의 새로운 역량을 연결해 지역을 넘어 더 넓은 여성 네트워크로 성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채세연 BPW한국연맹 대외협력위원장도 인천클럽의 강점으로 ‘연대’와 ‘세대 확장’을 꼽았다. 그는 “인천은 전국에서도 활동이 가장 활발한 클럽 가운데 하나로, 회원 간 연대와 활동력이 뛰어나다”며 “특히 젊은 인재 영입이 활발해 조직의 확장성과 성장 가능성이 돋보인다”고 평가했다.

세계 여성 네트워크의 가치, 인천에서 실천하다

BPW 인천클럽 회원들이 창립 20주년 축하무대에서 함께 노래하고 있다. 회원들은 행사 기획과 안내, 의전, 통역 등 준비와 진행에 직접 참여한 데 이어 축하무대도 함께하며 20주년의 의미를 나눴다. 사진=BPW 인천클럽 제공BPW 인천클럽 회원들이 창립 20주년 축하무대에서 함께 노래하고 있다. 회원들은 행사 기획과 안내, 의전, 통역 등 준비와 진행에 직접 참여한 데 이어 축하무대도 함께하며 20주년의 의미를 나눴다. 사진=BPW 인천클럽 제공

인천클럽의 20년은 세계 BPW의 역사와도 맞닿아 있다. BPW는 1930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레나 메디슨 필립스 박사의 주도로 창립돼 세계 각국의 전문직 여성을 잇는 국제 네트워크로 성장했다. 여성의 경제적 자립과 동등한 기회, 여성 리더십 확대를 주요 가치로 삼고 있다.

1968년 창립된 BPW한국연맹은 현재 전국 21개 클럽, 약 2,000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여성 은행원의 결혼퇴직각서 폐지와 정년차별 철폐, 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 인준운동 등에 참여했으며, 여성역량강화원칙(WEPs) 확산 등 경제 영역의 성평등 활동도 이어왔다.

인천클럽은 이러한 가치를 지역 현장에 뿌리내렸다. 2006년 창립해 2010년 전국 우수클럽으로 선정됐고, 2016년 창립 10주년을 계기로 국제교류를 확대했다. 코로나19 시기에도 회원 간 교류를 이어가며 조직의 기반을 지켰다.

현재 회원은 48명이다. 유설희 회장과 정윤주 제1부회장, 김미애 제2부회장을 중심으로 기획, 공보·출판, 국제관계, 교육, 재정, 회우분과 등이 운영된다. 차세대 여성인재 리더십 프로그램과 멘토링·장학사업, 심포지엄과 사회참여 활동도 꾸준히 이어왔다.

국제교류의 폭도 넓혔다. 중국 연변대 여성학센터와 일본 나가사키클럽, 대만 가오슝클럽 등과 교류하며 활동 무대를 ‘인천에서 세계로’ 확장했다. 이번 20주년 행사에서는 가오슝클럽과 업무협약을 맺고 전문직 여성 네트워크와 정보 교류, 경력개발·멘토링, 지역사회 봉사 등에서 협력을 이어가기로 했다.

“함께였기에 가능했다”…스무 살 BPW의 다음 20년

유설희 회장이 20주년을 맞아 가장 강조한 단어는 거창한 성과가 아닌 ‘함께’였다.

유 회장은 “20년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함께해 왔기에 가능했다”며 “함께 배우고, 함께 도전하고, 함께 응원하며 성장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지난 20년 동안 지켜온 BPW의 가치였다”고 돌아봤다.

이번 행사도 같은 생각에서 출발했다. 큰 규모나 화려한 연출보다 회원들이 직접 준비하고 참여하며 하나가 되는 기념식을 만드는 데 의미를 뒀다. 유 회장은 “앞으로도 여성의 경제적 자립과 전문성 향상이라는 BPW의 가치를 지키면서, 회원들의 성장을 지역사회 발전으로 연결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박종혁 인천시의회 의장과 도성훈 인천시교육감, 최명숙 BPW한국연맹 회장도 이날 자리를 함께해 인천클럽이 걸어온 20년과 새로운 출발을 축하했다.

기념식 막바지에는 회원들이 함께 노래했다. 초대회장과 역대 회장, 현재의 회원들이 한 공간에서 목소리를 보탰고, 하루 종일 주차장과 행사장을 오가며 뛰었던 회원들도 그제야 환하게 웃었다.

BPW 인천클럽의 스무 살은 화려해서 빛난 것이 아니었다. 2006년 한 여성 리더가 뿌린 작은 씨앗을 일곱 명의 회장과 수많은 회원이 자신의 자리에서 물 주고 키워왔기에 빛났다. 누군가는 앞에서 길을 열었고,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빈자리를 채웠다.

그렇게 ‘함께’ 만든 20년은 이제 다음 세대로 향한다. 선배 여성들이 어렵게 확보한 자리를 차세대 여성들이 더 넓히고, 그 힘을 다시 지역사회와 나누는 것. BPW 인천클럽이 준비하는 다음 20년은 바로 그곳에서 시작되고 있다.